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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톨릭/말은 시들지 않는다.

[스크랩] (958) 고해성사 - 이제민 신부

    좁은 고해실에 앉아 죄의 고백을 듣는다. 죄가 아니라 고백하는 자의 마음을 듣는다. 그들의 마음이 때론 죄에 대한 성찰과 정개보다는 사랑을 실천하겠다는 결심보다는 교회가 금하고 있는 계명을 어긴 것에 대한 죄책감으로 가득 차 있음을 느낀다. 주일을 어겼다는 죄를 듣지만 주일을 지키라고 한 교회의 법을 어겼기에 고해성사를 보는 것이다. 10년 만에 고해성사를 보면서도 “그동안 주일 미사 많이 빠졌습니다.”하는 것만을 고한다. 여기에는 의무적으로 판공성사의 이름으로 고해성사를 보도록 한 (한국)교회의 책임도 크다. 차라리 세례를 받지 않았다면 주일을 지켜야 한다는 억압이나 죄책감에서나 벗어나 편안한 마음으로 살 수 있었을 것을! 고해성사를 통해 인간은 자기가 잘못을 마음 아파하고 이를 하느님께 고백하면서 다시는 그런 잘못을 저지르지 않겠다고 다짐할 뿐만 아니라, 만나는 사람에게 자비를 실천하며 살겠다고 마음을 발할 수 있는 존재임을 알게 된다. 고해성사가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을 느끼게 하지 못한다면, 용서와 화해의 성사가 되지 못한다면, 인생을 통회하며 사랑으로 다시 일어서게 하지 못한다면 오로지 죄책감을 벗어버리기 위한 수단이기만 하다면, 고해성사는 우리에게 짐이다. 벗어버려야 할 형식일 뿐이다. 고해성사는 사제에게 죄를 고하는 것으로 하느님의 용서를 받게 하는 자동기계장치가 아니다. 고해성사에서 중요한 것은 죄를 고하는 것보다 자기의 죄스런 마음을 들여다보며 사랑의 삶을 살겠다고 마음을 발하게 하는 것이다. 하느님께서 창조 때 불어넣어주신 본심으로 돌아가 착하게 살겠다고 마음을 발하게 하는 것이다. - www.rijemin.com 에서
출처 : 어둠 속에 갇힌 불꽃
글쓴이 : 정중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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