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관악구 난곡동의 평범해 보이는 주택. 대문에서 옆 골목으로 들어가면 건물 벽을 통해 집 안으로 연결된 '베이비박스'가 설치돼 있다.
상자 안에는 두툼한 수건이 깔려있고 조명과 난방 장치도 있다. 아기가 들어온 것을 집 안에 알려주는 벨이 달려있다. '출생일을 꼭 적어주세요'라는 큼직한 메모도 눈에 띈다.
이 베이비박스는 장애아보호시설 '주사랑공동체의집'을 운영하는 이종락 목사가 아기를 돌볼 처지가 안 되는 부모들이 아기를 안전하게 두고 갈 수 있도록 직접 만들었다.
벽을 뚫어서 공간을 만들고 앞뒤로 여닫이 문을 단 형태인데 집 밖에서 손잡이를 당겨 문을 열고 아기를 안에 넣어두면 집안에서 벨소리를 듣고는 아기를 데려올 수 있게끔 설계된 박스다.
박스 옆에는 '불가피하게 아이를 돌보지 못할 처지에 있는 미혼모의 아기와 장애를 갖고 태어난 아기를 버리지 말고 여기에 넣어주세요'라는 안내문도 붙였다.
한파가 맹위를 떨치던 지난달 말 주말 오후 이곳을 찾았다.
이 목사는 아이들을 목욕시키고 저녁을 먹이느라 손을 바삐 움직이면서도 아이들 키우는 이야기를 할 땐 얼굴에 행복한 미소가 가득했고, 버림받은 아기를 발견했을 당시 상황이나 낙태 문제를 입에 올릴 때는 목소리를 높였다.
이곳에는 장애아 8명을 포함해 총 17명의 아이가 이 목사 부부와 함께 생활하고 있다. 2009년 12월 처음 베이비박스를 설치했는데 지난해 3월 첫 아기를 시작으로 그 해 12월까지 베이비박스를 통해 네 명이 이곳 공동체에 들어왔다.
이 목사는 길 고양이들이 길가에 있는 쓰레기를 뒤지고 물건을 뜯어놓은 장면을 보고 아기들이 그냥 길에 버려졌다가는 얼마나 위험할지 섬뜩한 느낌이 들어 공동체를 운영하게 됐다고 했다.
우연히 외국에서 운영하는 베이비박스를 보고 '이거다' 싶어 해당 국가로 수소문해봤지만 제대로 연락이 닿질 않아 결국 손수 박스를 만들게 됐다고 한다.
이 목사는 "부모들이 내버릴 때 아기가 얼마나 위험한 상황에 부닥칠지 상상하면 끔찍하다"며 "보통 버려지는 아기는 한 살도 채 안 된 경우가 많고 심지어 출생한지 채 24시간이 지나지 않은 신생아도 있어 더 위험하다"고 말했다.
만일을 대비해 만들어놓긴 했지만 실제로 아기가 베이비박스에 들어왔을 땐 "가슴이 철렁 내려앉고 마음이 아파 모두 울었다"고 했다.
이 목사는 혹여 아기를 두고 가려는 부모가 창피하거나 죄책감을 느껴 아기를 박스에 두지 않고 어둡고 추운 골목 구석에 그냥 두고 갈까 봐 베이비박스를 일부러 대문 옆 골목 안쪽으로 들어가야만 보이도록 설치해뒀다.
그런데도 지난해 크리스마스를 앞둔 12월22일 들어온 네 번째 아기는 가방에 담긴 채 주차장에 놓여 있었고, 추위에 새파랗게 질려 우는 것을 지나가던 주민이 발견해 초인종을 눌러줘 데려올 수 있었다.
'베이비박스에다 두고 갔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안타까워하고 있는데 얼마 뒤 아기를 두고 간 어린 엄마는 "베이비박스를 찾지 못해 어쩔 수 없이 주차장에 두고 왔다"며 확인 전화를 걸어왔다.
부모조차 힘들어 포기한 아기들을 기꺼이 거두는 일에서 행복을 느낀다는 이 목사이지만 "아기가 아플 때는 힘들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두 명의 아이들이 하늘나라로 떠났고, 지난해 4월 어느 새벽 공동체에 들어온 두 번째 베이비박스 아기 '새벽이'는 다운증후군에 심장 수술을 앞두고 폐렴까지 걸려 중환자실에서 며칠을 보내기도 했다.
이 목사의 바람은 두 가지다. 베이비박스를 전국으로 확산하고 싶지만, 아직 여력이 되질 않는다. 다행히 안양의 한 병원에서 연락을 해와 그곳에 베이비박스 2호가 설치될 가능성이 크다. 현재로선 서울에 대여섯 군데 정도만이라도 더 설치하는 게 희망이다.
주사랑공동체의집은 엘리베이터를 설치할 수 없어 장애아동보호시설 인가도 받지 못한 채 운영하고 있다. 문턱과 계단이 없는 곳에서 아이들이 조금이라도 편하게 움직이고, 안전하게 목욕을 할 수 있는 욕실이 있는 생활관을 마련하는 것도 시급하다.
"1년에 1천명 이상의 아기가 버려지고 그중에 80%가 죽고 20%만이 삽니다. 사람은 사람이지 휴지처럼 버리고 말고 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아기를 버린 부모를 처벌하는데만 관심을 둘 게 아니라 버려진 아기를 보호해줘야죠."
(서울=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