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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순례/터어키

2012-09-14 이즈미르 (스미르나)- 폴리카르푸스교회미사

 

9월 13일 묵었던 쿠샤다시 PINE BAY HOTEL(에게해가 바라보였던 큰 호텔)을 뒤로 하며 아쉬워...

터어키탕 대리석 가루섞인 온천 물에 몸 담았던 곳이고  뷔페에서 실수로 유료 포도주를 마셨던 일...

룸메이트 마리아언니께서 건배하고 지불...7달러 ..11 TL

 

 

PINE BAY 호텔 나오며...

 

 

Izmir 이즈미르 -당시 스미르나로 향하는 길...

 

Smyrna교회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요한 묵시록의 이 말씀은 스미르나 초대교회에 주신 말씀이다.당시 파트모스섬에 유배되었던 사도요한은 하늘이 열리면서 들려온 계시의 말씀을 듣고 소아시아 지역 일곱교회에 보내는 편지를 기술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스미르나에 있던 교회였다.

 

스미르나의 역사

 스미르나는 오ㅇ늘날 인구 200만명이 넘는 이즈미르로 이스탄불 앙카라에 이어 세번째 도시다,1차세계 대전으로 오스만 제국이 몰락하고 공화정이 들어서면서 도시이름도 스미르나에서 이즈미르로 바뀌었다.

 스미르나는 BC3천년 쯤부터 발전한 에게해안의 항구도시로 그리스 최대 서사시를 남긴 호메로스(Homer)의 고향이라고 전해진다. BC330년대 소아시아를 정복한 알렉산더 대왕이 스미르나에 주둔한 일이 있었다. 근처 파거스 산에서 사냥을 다녀와 낮잠을 자던 알렉산더는 네메시스 여신으로부터 스미르나에 새로운 도시를 건설하라는 이상한 꿈을 꾸었고 이을 실행에 옮겨 파거스산에는 거대한 성채를, 산 밑 해안에는 항구도시를 건설하였다. 이 성채는 지금도 잘 보존 되었다 한다.

스미르나는 기원전 27년 로마와 합병되면서 크게 번성하였다. 그러나170년대 이 지역을 휩쓴 지진으로 스미르나는 크게 파괴되고 말았다. 이 때 스미르나의 웅변가 아리스테데우스는 당시 로마 황제였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에게 도시재건을 호소하는 글을 올렸다. 철학자로도 유명한 황제는 명문에 감동되어 눈물을 흘렸다고..이런 과정을 거쳐 복구된 스미르나는 여러차례 일어난 지진으로 스미르나의 영광은 대부분파괴되거나 땅 속에 묻히고 말았다.

*순교자 성 폴리카르푸스 주교

스미르나교회는 사도 요한의 수제자인 순교자 폴리카르푸스(Polycarp)주교가 시무한 곳으로 예수의 직제자들과 교부들 사이에 연결고리 역할을 한 중요한 교부이다.. 그는 마르치온계 밀 발렌티누계 영지주의자들과 설전을 벌이곤 했다.

 폴리주교는 160년 교회가 환난을 당할 때 체포되어 로마 총독이 "내 앞에서 예수를 부인하면 살려주겠다"고 회유하였을 때 "지난 86년 동안 나는 예수님을 섬겼오. 그분은 한 번도 나를 버린 일이 없었어.그런데 내가 어떻게 그 분을 모른다고 말하여 나를 구원하신 주님을 욕되게 할 수 있겠오."라고 대답하여 화형에 처해졌는데 화염속에서도 주님을 찬미하며 순교하였다.(요한 묵시록 2장 8-11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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