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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Movie Therapy

미국영화를 보면 주인공들이 정신과에서 심리치료를 받는 장면이 심심찮게 나온다.
이것도 잘 사는 나라에 대한 사대주의일지 모르지만 그 장면은 이상하리만큼 자연스럽고 어떤 면에선 그런 그들의 여유가 부럽고 매력적으로까지 느껴지기도 한다.


* 사랑에 고픈 자여, 먼저 자신을 사랑하라 - <파니핑크>

‘여자가 서른 넘어서 결혼할 확률은 원자폭탄에 맞아 죽는 것보다 낮다’는 다시 듣기조차 두려운 신념으로 살아가는 29살의 여인 파니핑크.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아>라는 이 영화의 원제가 말해주듯이 죽음의 과정을 연습하는 강좌를 들으며 자신이 죽을 관을 미리 만들어 놓는 이 여인이 현재 가장 바라는 것을 자신을 사랑하는 남자를 만나는 것이다. 오르페오라는 지금 생각하면 다소 엽기적인 흑인 심령술사에게 운명의 짝을 곧 만날 것이라는 예언을 듣는 파니. 하지만 그 돌출행동으로 인해 믿음이 별로 가지 않는 오르페오의 예언은 당근 빗나가고 파니의 외로움과 아픔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함께 해주는 오르페오에게 파니는 따뜻함을 느끼게 된다.
여기서 재밌는 것은 그 둘의 사랑을 에로틱한 사랑(이는 사랑에서 가장 한계가 있는 종류임으로)으로 비추게 하지 않기 위해 오르페오를 동성애자 비슷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완전한 사랑>의 홍석천처럼 착한 동성애자는 여자들의 좋은 친구가 될 수 있다.

원래 병을 가지고 있던 오르페오는 이제 자기 별로 돌아가겠다-는 다소 시적인 대사를 남기고 세상을 떠난다. 그의 죽음으로 파니는 그동안 자신이 잊고 살아온 무언가를 깨닫는다. 자신은 항상 다른 사람이 나를 사랑해 주길 원했지 한번도 자기 자신을 사랑한 적이 없었다. 병들고 보잘것없는 흑인 심령술사의 따뜻한 마음과 진실한 애정으로 그녀는 자신이 얼마나 소중하고 사랑받을만한 존재인지를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느끼게 된다.
자신이 죽을 값비싼 관을 과감히 때려 부순 파니의 앞에는 거짓말처럼 오르페오가 예언한 남자가 나타나고 영화는 끝난다.

수없이 들은 이야기이지만 자기 자신은 자기가 잘 안다고, 생각해보면 재수 없고 화장 지우면 남이 볼까 무서운 자기 자신을 온전히 사랑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하지만 말이다. 누구든지 이 세상에 태어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오르페오가 파니를 위해 노래를 불러주기 위해 태어난 것처럼, 파니가 그 노래를 듣기 위해 태어난 것처럼 말이다. 당신은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다.

* 유부남/ 유부녀의 바람. 두 가지 선택 - <언페이스풀> <결혼은 미친 짓이다>

미국에 있는 친구한테 들은 얘긴데, 미국 사람들은 부부끼리 별로 섹스를 하지 않는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어떨까?
결혼한 친구들 정작 얘기는 하지 않지만 별로 재미는 없어 보인다.
50대를 넘긴 부모님 세대에서도 섹스를 즐긴다는 얘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다시 한번 <죽어도 좋아>의 박치규, 이순례 커플에게 경의를 표하며...
그렇다면 인간의 3대 욕구 중 시대가 가도 변치 않을 결혼한 인류의 성욕은 과연 어디서 어떻게 풀어야 한단 말인가?

<언페이스풀>의 주인공 코니는 잘나가는 남편, 귀여운 아들, 30대가 되어도 매력적인 외모를 가진 한 마디로 남부러울 것이 없다는 것이 문제인 여성이다.
어느 날 그녀는 자유분방하면서도 섹스어필하는 도서 중개인 폴을 만나고 그의 매력에 빠져 그와의 섹스를 탐닉하게 된다.
결과는?
아내와 가정을 사랑하는 코니의 남편이 폴을 살해한다.

이번에는 <결혼은 미친 짓이다>를 보자.
연희는 준영을 사랑하지만 조건에 더 부합하는 의사와 결혼한다. 연희는 준영에게 집을 제공하며 주말마다 찾아와 그와 사랑을 나눈다. 쿨하게 지내고자 하는 두 사람의 감정은 질투심 때문에 파열음이 생기고 연희는 그대로 준영을 떠난다.
결과는 어떨까? 한 계절이 지나고 눈이 쌓일 즈음 연희는 다시 준영을 찾는다.

똑같은 바람이지만 이 둘의 차이는 그 바람이 단순히 섹스를 위한 것이냐, 아니면 사랑이었느냐-가 아니었나 싶다. 점점 더 강도 높고 독특한 섹스를 그리고 있는 <언페이스풀>의 불륜과는 달리 <결혼은 미친 짓이다>의 불륜은 좀더 아기자기하고 정서적이고 로맨틱하다.
단순히 섹스를 위해 바람을 피운다는 것은 그 결론이 영화처럼 죽음으로까지 이어지지 않더라도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죄의식 덕택으로 끝이 보이는 결말을 가지고 온다. 또 다른 이성을 찾는 것보다는 현재의 아내과 남편과 좀더 색다르게 즐길 수 있는 무언가를 연구하는 편이 더 효율적인 선택일 것이다.
반면 불륜의 상대를 배우자보다 더 사랑하는 경우에는 좀더 문제가 복잡하다. 도덕적으로는 물론 그러면 안 되는 것이지만 연희처럼 우리들도 사랑하는 사람을 영원히 보지 못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괴로움이 분명하다. 그렇다고 이혼할 용기도 없다면? 허접하게 가정을 지키라는 해답을 드리고 싶지는 않다. 그렇다고 독자님들을 근본도 없는 호로자식으로 만들고 싶지도 않다.
이렇게 하면 어떨까? 한달에 한번 일년에 한번씩, 보고 싶을 때 만나는 것이다. 자신을 믿고 살아가는 아내와 남편을 위해 그들에게 죄가 될 행동을 가급적 삼간다.
주의할 점은 언제나 알리바이는 주도면밀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며, 당부하고 싶은 점은 그 전에 정말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시라는 것이다.

 
* 반복되는 일상 즐기는 법 - <사랑의 블랙홀>

 
처음에 그리 재미있던 혼자 놀기의 진수도 이제는 지루하기만 하고 친구들한테 전화 걸어 뭐 신나는 일, 재미난 일 없냐고 묻다가 구박 당하기 일쑤인 백수생활.
아직까지 딸을 사랑하시는 어머니의 자애로움으로 대낮에도 케이블 TV를 즐기는 필자에게 어느 날 10년 전 보았던 구닥다리 영화가 눈에 확 들어왔다.
<사랑의 블랙홀> 그 이름만으로도 왠지 허접스러움이 느껴질지 모르지만 이 영화, 간만에 절절한 공감대를 형성한 대단한 영화였다.

별로 잘 생기지 못한 얼굴에 싸가지까지 없어서 뭇사람들에게 미움을 받고 살아가나 자신은 별로 개의치 않는 기상 통보관 필. 취재차 PD와 카메라맨과 함께 지방에 내려간 그에게 하나님께서 벌을 내리셨는지 매일 2월 2일이 반복되는 현상이 일어난다.
처음엔 좋아라-하며 돈을 훔치고 여자를 꼬시는 등 허접한 행동을 일삼는 필. 하지만 좋은 것도 한 두 번. 매일 똑같은 공간, 똑같은 사람, 똑같은 얘기를 들어야 하는 것은 거의 고문에 가까워지고 더 이상 삶의 의욕을 잃은 필은 자살을 기도하지만 매일 아침 또다시 2월 2일은 다시 시작되고야 만다.
평소 흠모하던 PD 리타에게 자신의 마음을 솔직히 고백하고 ‘하지만 내일이면 당신은 또 나를 잊겠지’-라는 대사와 함께 쓸쓸히 그녀를 바라보는 필. 이제 자신의 상황을 겸허히 받아들이기로 한 필은 매일 반복되는 사람들에게 조금씩 도움을 주며 살아간다.
사랑은 주는 그대로 돌아오는 것이라고 이제 사람들에게 필은 (하루만에)소중하고 고마운 존재가 되며 이는 그가 사랑했던 리타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그렇다! 이것이다. 지루한 일상을 피해 아파트 옥상에서 번지점프를 해야 할 필요는 없다.
매일 아침 일어나 아무 말 없이 얼굴 마주보는 가족들에게 내가 먼저 웃어주고, 힘들 때 위로의 말을 건네는 작은 것들이 무료하기만 한 일상을 바꾸는 계기가 되는 것이다.
필이 그 날 죽을 운명을 가진 노인에게 따뜻한 한 끼 식사를 대접하는 것과 같이, 내가 오늘 너에게 건네 말 한 마디, 미소가 그이에겐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 따뜻함으로 남을 수도 있는 것이다.
아무래도 가치 있게 사는 삶이란 사랑을 주고받고 하는 그 단순한 관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 같다.

* 이별에 아파 본 적 있나요? -<러브레터>

누군가를 떠나보내야 하는 것은 슬픈 일이다.
더구나 그 사람이 사랑했던 사람이라면 그 상처는 영원히 잊혀지지 않는다.

사랑했던 연인이 죽은 산에 올라 그의 이름을 부르며 잘 있느냐-고 외치는 장면은 그 자체가 나에게 치료의 과정이었다. 추억이라는 것이 아름답다고 하지만 가끔은 그 기억이 차라리 사라졌으면 하고 바랄 때가 있다. 아무렇지 않게 그의 무덤 앞에서 절을 하고 그의 사진첩을 이리 저리 훑어보다가도 그의 이름을 부르며 단번에 눈물을 흘리는 히로코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친구들과 함께 술을 마시며 하하호호 거리면서도 집에 와 멍하니 창밖을 내다보며 불 켜진 창문이 몇 개인지 세어보다 갑작스럽게 그와 같이 먹던 오징어가 생각나 울어버리는 게 바로 아름답게 포장된 추억이라는 것의 실제 모습이다.

이별의 치료에는 반드시 두 가지가 필요하다. 시간과 새로운 사랑.
시간은 그 사람과 함께 했던 기억과 그 기억 속에서 나의 모습을 다시 한번 되돌아보고 그 사람의 모든 것, 나의 모든 것을 용서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고,
새로운 사랑은 나를 용서하면서 새롭게 태어난 나 자신을 제대로 보아줄 누군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 쓰레기에게도 순수는 있다 - <박하사탕>

꿈, 사랑, 희망, 믿음. 모든 것을 잃고 그 누구도 주위에 남아있지 않는 중년의 사내가 어느 야유회 장을 들려 행패를 늘어놓는다. 알고 보니 서로 아는 사이 같다. 갑자기 사내는 기찻길로 올라가 ‘다시 돌아갈래’를 외치며 기차를 향해 소리친다.
그리고 긴 여정이 시작된다. 거꾸로 달리는 기차를 따라 거꾸로 거꾸로... 거기에는 아내의 불륜 현장을 목격하는 그의 모습이, 첫사랑을 그리며 외딴 여자의 품에 안기는 그의 모습이, 폭력적으로 변해가는 자신을 미워하는 그의 모습이 보인다.
그리고... 다시 야유회. 쓰레기로 보였던 그의 20살 시절. 자신이 사랑하던 여자와 눈빛을 주고받으며 포크송을 부르는 순수한 모습의 그가 있다.

나는 인간이 변한다는 것을 크게 믿지 않았다. 하지만 대학을 졸업한 시절의 필자와 지금의 필자의 모습은 정말 같은 인간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변해있다. 찬란했던 꿈의 스케일이 점차 작아지고 있고, 사랑에 대한 자신감도 많이 상실됐다. 무엇보다 그 때 함께 했던 이들이 지금은 남아있지 않다. 이런 점에서 우리 모두는 <박하사탕>의 영호와 같이 변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가끔은 너무 많이 변해버린 자신의 모습을 보고 헤어날 수 없는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져버리는 수가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어떤 쓰레기같은 인간이라 할지라도 그 내면에는 박하사탕처럼 순수, 순백의 무언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그게 인간이다-라고 믿고 싶다.

오늘은 <박하사탕>의 거꾸로 가는 기차를 타고 자신이 가장 순수했던 가장 돌아가고 싶은 순간은 찾아 여행을 떠나 보는 것은 어떨까?

* 영화치료의 정의

영화치료(cinematherapy)는 좁게는 영화를 감상하고 심리치료에 활용하는 것을 지칭하기도 하며 넓게는 심리치료의 수단으로 영화를 활용하는 방법을 통칭하는 치료적 기법이라 정의합니다. 영화치료라는 용어는 1990년에 Berg-Cross 등에 의해 처음으로 사용되었고, 필름 치료 (film therapy), 비디오 치료 (video work), 릴 치료 (reel therapy)라 불리 우기도 합니다. 

  

*영화치료의 역사

영화치료는 90년대 초반부터 미국에서 사회 복지, 간호, 임상 심리학의 전문가들이 집단상담이나 부부 상담 등에 영화를 활용하는 방법을 모색하면서부터 싹트기 시작했습니다. 대표적인 영화치료의 주창자중 한 명인 미국의 Northridge Hospital의 Walter E. Jacobson 박사는 영화치료를 통해 환자들이 영화 속 인물과 자신을 동일시하면서 비슷한 상황을 이해하고 극복하는데 도움을 받았다고 주장했고, 캘리포니아 주립대 심리학과의 Stuart P. Fischoff 교수도 ‘영화란 영혼에 놓는 주사’라고 하였습니다.


비디오 기기의 보급이 보편화 된 90년대 후반부터 영화 치료는 미국이나 유럽에서 독서치료를 대체하거나 보완하는 새로운 예술치료법의 하나로 연구가 활발히 진행 되고 있습니다. 최근 영화치료는 기존의 영화 목록을 작성하는 방식을 떠나 다양한 심리치료에 통합되어 사용될 수 있는 체계적인 치료 방법과 영화치료만의 방법론이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는 상황으로 발전하고 있는 중입니다.

 

 *영화치료의 장점

영화치료는 아무리 길어도 2시간이면 관람이 충분하고, 문자 해독력이 약하거나 지능이 낮은 환자나 아동 청소년들도 접근하기 용이합니다. 독서치료보다 시간이 절약되고, 사람들에게 보다 가까이 있고 매체에 접근하기가 쉽다는 장점도 있습니다. 영화치료는 대중들에게 공통적인 영상 문자를 매개로 하므로 외국 서적이 번역되면서 생기는 문화적 이질감의 문제 또한 비교적 쉽게 극복할 수 있게 합니다. 게다가 다른 어떤 형태의 예술보다 영화는 핍진성(verisimilitude: 수용자가 텍스트를 그럴듯하고 있음직한 이야기로 받아들이는 정도)이 강하고, 청각과 시각, 문자언어 모두를 동원하므로 수용자의 지각에 강력한 영향을 주는 장점이 있습니다.

Hesley와 Hesley(1998)는 심리치료에 있어서 영화 감상을 활용 할 때 유용한 점을 다음의 여덟 가지로 요약하였습니다. 첫째, 치료 계획에 도움을 준다. 둘째 희망과 용기를 제공한다. 셋째, 문제를 재구조화 시킨다. 넷째, 역할 모델을 제공한다. 다섯째, 내적인 자원을 파악하고 강화시킨다. 여섯째, 정서를 증대 시킨다. 일곱째, 의사소통을 증가시킨다. 여덟째, 내담자가 가치의 우선순위를 매길 수 있도록 도와준다. 

  

*영화치료의 과정

영화치료는 크게 평가, 시행, 보고 및 논의 단계가 있습니다.

영화치료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준비 과정이 필요합니다. 평가 단계에서는 치료의 목적과 내담자의 문제, 취미, 관심 활동, 직업, 지능, 문화, 민족, 사회 경제적 지위, 성적 지향성, 성차 같은 내담자의 특징들이 평가되어야 하고, 영화의 내용을 이해하는 내담자의 능력과 캐릭터와 내담자간의 유사점과 차이점이 고려되어야 합니다. 정확한 평가에 기초하여 내담자와 내담자의 문제에 적합한 영화를 선택되어 집니다.


시행 단계에서 일단 적합한 영화가 선택되고 나면 이를 내담자에게 권합니다. 치료자는 내담자에게 영화를 권하기 전에 반드시 영화를 보았어야 하며, 내담자에게 왜 그 영화를 봐야하는지 이유를 설명해주고, 언제 어디서 누구와 함께 영화를 봐야하는 지도해 주어야 합니다.

보고 및 논의 단계에서는 영화에 대한 전반적인 인상을 논의하고 이후 캐릭터나 내담자의 문제와 연관시켜 토론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 기타 영화치료와 연관된 더 구체적인 사항과 기법은 한국영상응용연구소에서 주최하는 워크샵과 자료실을 이용 하시기 바랍니다.

 

출처 : 한국영상응용연구소

 



클래식 ost "사랑하면 할수록 - 한성민"

출처 : 어둠 속에 갇힌 불꽃
글쓴이 : 정중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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