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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톨릭/성 프란치스코회

가난

 인간의 위치가 가난이다. 하느님의 피조물인 인간의 위치는 무엇을 바라도록 되어있는 위치가 아니다. 자동차가 운전수에게 무엇을 바랄 수 있는가? 바란다는 자체가 자기 위치를 모르고 하는 짓이다. 본질적으로 인간은 그러한 위치에 있지를 않다. "다른 아무것도, 우리는 원하지도 바라지도 맙시다"(미인준 회칙 23,9a). 무엇을 바란다면 그것은 주인이신 하느님께만 해당되는 일이다. 무엇을 바란다면 그것은 하느님의 영역을 침투하여 들어가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뒤죽박죽 혼란이 일어나서 어디로 가야 할 지 앞 길이 보이지 않는다. 

   위치를 찾았으면 그 다음에 할 일은 찾은 그 자리를 묵묵히 지키는 것이다. 이것이 겸손이다. 자신의 분수를 알아차리고 그 자리를 지키기만 하면 하느님께서 그렇게 좋아하실 수가 없다. 자동차는 운전수가 정차시킨 곳에 묵묵히 있기만 하면 된다. 그래서 자기 자리를 지키기만 하면 저절로 성인이 된다. 여물통에 그냥 누워 있기만 하면 된다는 말이다. 특별히 할 일이 없다. 특별히 무슨 일을 해야만 하는 것이 아니다.  "다른 아무것도 마음에 들어하지도 만족하지도 맙시다"(미인준 회칙 23,9b). 자기의 분수를 모르고 자리를 지키지 않으면 하느님 만날 생각은 꿈도 꾸지 말아야 하며, 안정은 죽을 때까지 찾을 길이 없고, 일생을 방황으로 마치게 된다.

   성 프란치스코에게 가난의 덕과 겸손의 덕은 자매 덕이다. 서로 분리될 수 없는 관계다. 가난 안에 겸손이 있고, 겸손 안에 가난이 있다. 가난 없는 겸손은 위장된 혼란스러운 겸손이요, 겸손 없는 가난은 부귀 영화와 출세를 꿈꾸는 가난이다(참조.덕들에게 바치는 인사 11-12). 가난과 겸손이 내 안에서 하나가 되면 나는 다소곳해지고 착하고 귀여워지며 그저 모든 게 좋기만 하고 그렇다. 따뜻한 햇볕이 내려 쪼인다. 이를 관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