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남긴 삶의 향기가
하늘아래 날마다 벌어지는 많은 일들 가운데 '죽음' 만큼 가슴 아픈 일이
있을까요? 내가 사랑했던 그 사람, 매일 아침 나를 깨워 주던 그 사람,
내가 준비한 아침 식사를 맛있게 먹고 출근하던 바로 그 사람, 그 체취,
그 따듯한 웃음.... ,
이 모든 것들을 더는 이 세상에서 찾아 볼 수 없다는 것은 참으로 견디기
힘든 일입니다. 지난해 봄, 마흔도 채 안 된 나이에 세상을 떠난 한 형제님의
임종을 지켜본 일이 있습니다.
암세포가 퍼져 그 고통이 끔찍했음에도 그분이 죽음을 받아들이는 자세는
참으로 의연했습니다.그분은 하루 온종일을 기도로 보냈습니다.병실을 방문할
때마다 그분의 머리맡에는 커다란 묵주와 성서가 놓여 있었습니다.
임종이 가까워지면서 형제님은 더욱 성서를 가까이했습니다.
잠시도 성서를 손에서 놓지 않았습니다. 극심한 통증 때문에 정신이 흔미할
때에도 시편 23장을 천천히 음미하던 형제님 얼굴을 언제까지나
잊지 못할 것입니다.
"야훼는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어라. 푸른 풀밭에 누워 놀게 하시고
물가로 이끌어 쉬게 하시니 지쳣던 이몸이 생기가 넘친다...나 비록 음산한
죽음의 골짜기를 지날지라도 내곁에 주님 계시오니 무서울 것 없어라." (1-4절)
먼저 떠나보내기가 너무 아쉽고 안타가워 몸부림치던 가족들을 오히려 조용히
위로하던 형제님의 모습은 제게 참으로 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물론 그분은 오래지 않아 지친 몸을 조용히 내려놓고, 고통이 없는 곳으로
떠나갔습니다. 그분의 임종을 가가이서 지켜보던 저는 한가지 교훈을 마음에
새기게 되었습니다.
죽음을 눈앞에 두고서도 평온했던 형제님 모습을 통해 부활신앙이 무엇인지를
조금이나마 알게 된 것입니다.
아무리 큰 고통이라 할지라도 , 아무리 감당하기 힌든 십자가라 할지라도
죽음까지 견디는 굳건한 신앙, 특히 부활 신앙만 확실히 지니고 있다면
기꺼이 견뎌 낼 수 있겠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 분이 이 세상을 떠난 지 한 달, 두 달이 지나고 벌써 일년이 다가오지만
형제님 모습은 언제나 제 마음에 어제 일처럼 깊이 각인 되어 있습니다.
임종의 고통 앞에서도 평화로웠던 얼굴, 차분하게 가족들을 위로하던
따뜻한 음성, 끝까지 예의와 품위를 지키고 남을 배려하기 위해 애쓰던
그분 모습은, 세월이 흘러도 잊혀지지 않고 언제나 제 기억속에 남아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묵상하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 그래! 어쩌면 부활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그 누군가가 이미 이 세상을
떠나고 없지만, 그가 이 세상에 남긴 삶의 향기가 다른 사람의 가슴 속에
지속적으로 남아 있는 것, 그 자체가 부활의 한 부분이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 말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일상에서 이웃을 위해 크게 한번 희생 할 때, 참기 힘든
상황에서 묵묵히 인내할 때, 사심 없는 선행을 베풀 때, 기꺼이 양보할 때,
우리는 이미 다른 사람들 마음에 아름다운 모습으로 각인되고, 그 순간 우리는
다른 사람들 마음에서 부활을 시작하는 것이리라 굳게 믿습니다.
진정으로 부활신앙을 믿는 사람들은 날마다 이 세상에서 죽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잠시 지나갈 이 세상에 모든 것을 걸지 않습니다. 또한 그들은 언젠가
썩어 없어질 나약한 육신의 안위를 위해 모든 것을 걸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마침내 이 세상 너머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계시는 부활하신
예수님에게만 희망을 두고 살아갑니다.
부활의 참된 의미는 예쁜 부활 계란 바구니를 열심히 만든다든지, 부활성가를
열심히 연습한다든지, 알렐루야를 크게 외치는 데만 있지 않습니다.
그 보다 더 중요한 일은 우리 각자 안에 부활하기 위해 몸소 고통을 겪으시고
돌아가신 예수님을 기억하는 일입니다.
한번 더 용서하고, 한번 더 희생하고,한번 더 죽는 일입니다.
그 순간 우리는 진정으로 주님 부활을 경축하는 것입니다.
아침마다 무상으로 주어지는 하느님의 선물인 '작은 부활'을 기쁘게 받아
들이십시오. 아침마다 새롭게 부활하는 또 다른 예수님이 되십시오.
용기 있게 큰 목소리로 주님 부활을 선포하십시오. 그 순간 우리는
진정 예수님 부활을 온몸으로 경축하는 것입니다.
▒ 살레시오 수도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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