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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멋진풍경사진

[스크랩] 죽산, 이진터 (카톨릭 성지)

죽산 순교 성지 경기도 안성시 일죽면 죽림리 이 곳은 병인박해 때(1866년)수 많은 순교자들이 주님을 증거하며 생명을 바쳤던 곳, 수 많은 무명 순교자와 이름이 밝혀진 스물 다섯분의 순교의 사형장이다. 두들겨 때려 반 쯤 죽인 상태에서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게 한 유일한 순교성지이다. 빠듯한 순례일정으로 이 곳은 내일 순례지로 정해졌는데... 하룻밤을 유할 배티성지를 찾아가는 길에 성지라는 푯말이 눈에 띄어 주님 감사합니다를 연발하며 들어섰다. 해는 서산을 뉘엿뉘엿 넘어 갈 즈음 낙조에 반사된 예수성심상의 포근함이 순레객의 바쁜걸음을 붙잡아 주신다... 왜 그리도 바쁘게 서둘렀을까? 커다란 돌 묵주를 손으로 스다듬을 뿐, 내 입에서 나온 기도는 "주님 감사합니다" 라는 단어 밖에 기억되지 않는다...말을 잊어었다. 이 번 순례는 중부권의 성지를 돌러 볼 참으로 나선길이다 일반적인 여행이 아닌 순례의 의미를 다분히 담고 첫 방문지인 음성 감곡 매괴성당을 나와서는 최양업 신부님의 얼이 담긴 배티성지로 가는 길을 찾기 위해 나의 온 뇌의 조직들은 길에만 쏠려 경직되어 있었기에... 이진터라는 푯말을 보는 순간, 오늘 하루를 어줍잖은 이 순례객들을 이끌어 주신 분, 주님께서 함께 하셨다는 감격이 가슴을 치밀어 올라왔기 때문이다. 아직도 제 색깔을 잃지 않고 피어있는 줄 장미에게도 감사를 할 정도였으니까! 길을 잃고 헤메지는 않았지만 어둡기 전에 배티에 도착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 사람의 심리를 매몰차게 몰아쳤었다. 마음을 가다듬고 기도 할 여유로움이 생겼다. 나를 이곳으로 이끌어 주신 분. 핸들을 잡고 계신 분이 계셨음을 잊고 있었던 그 순간들을 ... 여행을 떠나 온 것 같은 붕 뜨있는 기분을 가라앉혀 순례자로서의 마음가짐을 다져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순례의 길에 믿음 신뢰 없이 붕 뜨 있었으니 "주님 당신만 믿습니다" 이곳 죽산은 조선시대 도호부로 "죽주산성"이 있었다 한다 ("죽주산성"은 고려 때 몽고군과 임란 때 왜적을 물리친 곳) 고려 때 몸고군이 '송문주 장군'이 지키고 있는 죽주산성을 공략하기 위해 진을 친 곳, 오랑캐가 진을 친 곳이라 해서 이진(夷陳)터라 불렀다 이러한 유래를 지닌 이진터가 병인 박해 때, "거기로 끌려가면 죽는 사람이 잊으라" 하여 '잊은터'란 이름으로 바뀌어 오늘 날 교우들 사이에 순교의 처절함이 서린 장소로 가슴에 새겨진 곳이다. 죽산성지 부근에 '두들기'라는 곳이 있다. 지형이 두둑하다해서 '두들기'라 붙였졌다고도 하고 땅이 진흙이여서 신 바닥의 진흙을 털기 위해 두들겨 털었다고 해서 '두들기'라고 도하고 병인 박해 때 포졸들이 교우들을 두들겨 팼다고 해서 두들기라고 불렀다 이곳은 지리적으로 충청, 전라, 경상도로 갈라지는 길목이라서 조선 시대에 도호부가 설치 됐던 곳, 그리 넓다고 할 수 없으나 지형은 평평한 평지라서 어른들을 모시고 순례를 와도 무방한 곳이다. 오월달 쯤 오면 장미 터널을 걸으며 장미향기와 기도를 함께 봉헌하고 예수 성심상을 중심으로 빙돌아가며 커다란 돌묵주가 있어 묵주의 기도를... 성모동산으로 꾸며진 아름다운 곳이다 언덕위엔 14처가 있어 십자가의 길 기도를 작은 경당이 있어 성체조배도 할 수도 또 큰 성전에는 많은 수의 교우들이 미사 참례나 피정을 할 수 있는 성전이었다. 바같 주차장은 준비해온 도시락을 먹고 쉴 수 있는 넓은 공간이었다 다음엔 연도회 어른들을 모시고 하루를 이곳에 오고싶다 이 땅에 치명 당하신 수많은 순교선열들의 얼을 되새기며 이 땅에서 순교를 허락하신 주님께 감사를 ... 순교선열들의 전구를 청하며... 이 순례여정에서 주님의 현존을 체험할 수 있는 은혜를 청해본다
출처 : 할미
글쓴이 : 할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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