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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독서록

우러피언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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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칸 드림은 이제 끝났다”
경향신문 | 한윤정 기자 | 2005.01.22
‘아메리칸 드림은 없다. 이제 세계의 희망은 유럽이다.’

미래학자이자 사회사상가인 제레미 리프킨의 신간 ‘유러피언 드림’(이원기 옮김·민음사)이 출간됐다. 그는 “미국의 자수성가 신화는 물질만능주의로 변하고, 개척과 모험정신은 한탕주의로 변질했으며, 개인주의는 이기주의로 퇴색했다”면서 “사회적 집단책임과 세계화 의식을 강조하는 유러피언 드림에 주목한다”고 말한다.


리프킨은 “미국인은 일하기 위해 살고 유럽인은 살기 위해 일하지만 유럽의 인간적 자본주의가 훨씬 효율적”이라면서 그 근거로 ‘포춘’이 선정한 140개 대기업 가운데 유럽회사(61개)가 미국회사(50개)보다 더 많다는 점을 든다. 세계 1위 휴대폰 업체는 모토로라가 아니라 핀란드의 노키아이며 무선통신시장의 선두주자는 영국의 보다폰, 세계 최대 출판사는 독일의 베텔스만, 세계 비행기 시장을 장악한 회사는 보잉이 아니라 에어버스라는 것이다. 향후 생산성과 기술도 유럽이 미국을 추월할 것으로 본다.


그는 또 유럽연합(EU)과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의 차이를 지적한다. NAFTA가 단순한 경제공동체인데 비해 EU는 정치·경제·운송·에너지·통신·교육 등 전방위에 걸친 네트워크이다. 이 때문에 미국과 독일을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LA와 독일을 비교해야 한다는 것이다.


유럽에 대한 리프킨의 찬사는 계속된다. 아메리칸 드림은 자연을 정복의 대상으로 보지만 유러피언 드림은 생명공동체로 본다고 말한다. 그는 최근 EU가 유전자변형식품에 대해 강력한 제재조치를 취하고 안전·환경테스트를 의무화한 것을 높이 평가한다. 특히 차세대 에너지인 수소프로젝트를 둘러싼 미국과 유럽의 차이를 지목한다.


미국은 이산화탄소와 핵폐기물을 발생시키는 석탄과 원자력에서 ‘검은 수소’를 뽑아내는 반면, EU는 태양열·수력을 활용한 친환경적 ‘푸른 수소’를 생산한다는 것이다.


아메리칸 드림과 유러피언 드림은 주권의 해석에서도 대립한다. 미국이 민족국가시대의 주권 개념을 고수해 일방주의라는 비난을 사는데 비해 유럽은 국가법보다 보편적 인권규약을 중시한다고 본다. 리프킨에게는 유럽의 고령화 현상마저 좋게 보인다. “젊음의 혈기가 아니라 노련하고 성숙한 지혜를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편 그는 새롭게 변화하는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공감’임을 강조한다. 이타심보다 훨씬 깊은 감정인 공감은 ‘다른 사람의 고난으로부터 자신도 얼마든지 그렇게 될 수 있다고 느끼는 것’으로 타인이나 다른 문화를 이성이 아닌 감성으로 이해하는 능력이다. 리프킨은 21세기가 홉스의 리바이어선, 루소의 사회계약론, 마키아벨리의 공화주의를 뛰어넘는 ‘공감의 시대’가 될 것이라며, 이에 맞도록 교육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노동의 종말’(1995년) ‘소유의 종말’(2000년) 등으로 세계적인 저술가가 된 리프킨의 신간은 소위 ‘빅 타이틀’로 불리면서 독자들의 큰 관심을 끌고 있다.


그런데 이번 신간은 유럽과 미국을 선악으로 대비하는 이분법적 시각, 세계 문화의 주도권이 대서양을 사이에 두고 유럽과 미국을 오간다는 식의 서구중심주의가 두드러져 비판적 독서가 요구된다.


로마노 프로디 전 EU 집행위원장은 이 책을 놓고 “유럽의 엄청난 실험과 파급효과의 본질을 제대로 진단한다”는 찬사를 보냈지만 그보다는 국제정치에서의 일방주의, 비인간화된 자본주의로 인해 비난받는 미국의 각성을 촉구하는 메시지로 보아야 할 것 같다.


리프킨은 SBS 초청으로 지난 18일 내한, 19일 이해찬 국무총리를 비롯한 400명의 정·재계 인사를 대상으로 ‘노동의 미래는 없다’란 주제의 강연(21일 방송)을 한 뒤 20일 출국했다.
민족 초월한 EU는 21세기의 등불이다
동아일보 | 민동용 기자 | 2005.01.29
‘노동의 종말’, ‘소유의 종말’의 저자가 이번에는 아메리칸 드림의 ‘종말’을 이야기한다. 물론 미국은 경제적 군사적으로 세계 최강국이다. 그러나 무한한 기회와 희망, 그리고 낙관의 땅이었던 미국이 이제 세계인이 동경하는 대상이 아니라 두려움과 혐오의 대상이 됐다고 저자는 본다. 신분 상승의 꿈은 1970년대까지의 이야기일 뿐, 빈부의 격차는 더욱 커졌고 부의 세습은 더욱 일상화됐다.


저자는 몰락하는 아메리칸 드림의 대체물로 유럽연합(EU)이라는 새로운 꿈, 즉 ‘유러피안 드림’을 제시한다.


EU는 일단 삶의 질에서 미국을 앞질렀다. EU의 국내총생산(GDP) 10조5000억 달러는 미국의 GDP를 넘어섰고, 10만 명당 의사 수는 322명 대 279명으로 EU가 우세하다. 산업화를 이룬 국가들 가운데 영아사망률도 미국보다 EU가 훨씬 낮으며, 평균 수명도 78세 대 76.9세로 EU가 높다. 부의 분배, 소득 불균등, 살인사건 발생 건수, 교도소 수감자 등의 통계를 통해서도 미국은 EU보다 훨씬 뒤떨어진 삶의 질을 보여 주고 있다.


저자는 삶의 질 같은 가시적 실체를 넘어서는 유러피안 드림과 아메리칸 드림의 근본적 차이에서 21세기 인류의 이상을 찾는다.


이른바 ‘유럽 합중국’인 EU는 1000여 년에 걸친 갈등과 전쟁의 역사를 딛고 인류 역사상 최초로 민족국가를 초월한 미래의 비전이라는 것이다. 즉 영토와 주권으로 대표되는 민족국가라는 근대의 틀을 벗어 던진, 초영역적인 통치기구로 21세기에 걸맞다. 유러피안 드림을 구체화할 EU헌법은 그 초점을 영토, 민족, 시민으로부터 인류와 지구라는 보편적인 것으로 옮겼다. 따라서 인간 다양성을 존중하고 포괄성을 증진하며, 인권과 자연권을 으뜸으로 치고 지속가능한 발전을 지향하는 이 헌법이야말로 싹트는 유러피안 드림의 씨줄과 날줄이며 새 시대로 인류를 인도하는 등불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유러피안 드림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유럽인들의 염세주의와 냉소주의가 극복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것뿐일까.


지난해 5월 영국 BBC 인터넷 뉴스는 서아프리카 국가 기니의 30대 남성이 겪은 유러피안 드림의 실체를 보도했다. 많은 돈과 4년이라는 시간을 들여 겨우 유럽에 왔지만 그가 겪은 것은 아프리카인들에 대한 차별대우였다. 그는 “유러피안 드림은 악몽이었다”고 말했다. 유러피안 드림이라는 이상과 유럽의 현실 사이의 괴리를 극복하지 못한다면 유러피안 드림은 그저 백일몽에 그칠지 모른다.
기사제공 :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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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새로운 패러다임 삶의 質·조화·생태공동체
세계일보 | 송민섭 기자 | 2005.01.24
‘엔트로피 법칙’(1989) ‘노동의 종말’(1995) ‘소유의 종말’(2000) ‘수소 경제’(2002) 등의 저술활동으로 문명비판가, 미래학자로 알려진 제레미 리프킨(60)의 사회변혁운동가로서의 면모와 사상을 짐작할 수 있는 단서 하나. 리프킨은 미국 독립 200주년에 즈음한 1973년, ‘미국식 혁명을 이루는 법’이라는 평론집에 실은 글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새로운 미국 혁명은 우리의 사회, 경제, 그리고 정치제도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와야 할 것이다. … 인권은 풍요라는 가치보다 상위에 존재할 것이다. 개인적 이익은 공동의 이익과 동일시될 것이다. 기술은 인간과 환경을 착취하기보다는 이에 봉사하게 될 것이다. 경제에 대한 통제력은 매우 부유한 사람들의 손을 떠나서 근로자와 소비자의 품 안으로 돌아갈 것이다.”


흔히 리프킨의 저서에 대해 ‘비판은 넘치나 대안은 없다’라는 아쉬움을 토로하는 목소리가 많다. 강준만 전북대 교수는 이 같은 비판에 대해 “근본적인 패러다임을 바꾸자고 주장하는 사람에게 무슨 얼어죽을 정밀한 대안이란 말인가”라고 말했다. 강 교수는 리프킨이 “워낙 근본적이고 광범위한 것을 다룬다”며 그가 환경 파괴 위험과 테크놀로지의 재앙적 남용을 경고하며 유전자 조작에 반대할 뿐 아니라 인류의 진보라고 하는 개념 자체를 수정하고 과학적 탐구의 성격에 대한 기존 생각과 경제 활동의 개념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할 것을 요구한다고 소개하기도 했다.


자연을 개척해 진보를 이룩한다는 근대 프로젝트에 저항한 포스트모더니즘의 실험이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는 상황에서 리프킨은 근대 이후의 시대에 대해 어떠한 밑그림을 그리고 있을까.


리프킨의 신작 ‘유러피언 드림’(이원기 옮김·민음사)은 그의 이상을 개략적으로 살필 수 있다는 점에서 유용하다. 리프킨은 이 책에서 근대의 가치를 ‘아메리칸 드림’과 병치시킨다. 리프킨은 자수성가 신화가 물질만능주의로 변하고 개척과 모험정신이 한탕주의로 변질되고, 개인주의가 이기주의로 퇴색하는 등 근대 프로젝트의 결과를 바라보기가 참혹한 이 시대, 과연 인류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에 대한 나름의 생각을 풀어놓는다.


포스트모더니즘이 그 대안일 수 있을까. 그는 근대의 ‘절대적 가치와 엄격한 진실’에 맞서 ‘보편적 인권과 자연의 권리’를 주창한 포스트모더니즘 역시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하나의 보편적 사상을 인정한다는 점에서 자가당착에 빠졌다고 주장한다.


그가 대안으로 내놓은 것은 ‘유러피언 드림’. 유러피언 드림은 부의 축적과 개인의 자율성보다는 포괄성, 다양성, 지속가능성, 삶의 질, 조화에 주목한다.


리프킨은 “국경과 재산권, 시민권은 더 이상 인류의 안전을 보장하지 못한다”면서 “자연의 정복보다는 생태 공동체를, 시간 사용의 효율성보다는 삶의 질을, 융화보다는 조화를 추구하는 유럽의 ‘공감’이 인류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되어야 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기사제공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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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 주도권’ 다음은 유럽이다
문화일보 | 정충신 기자 | 2005.01.21
세계사의 주요 흐름을 진단하는 주요 필자 명단에 항상 들어있는 제러미 리프킨의 신작이다. 90년대 ‘노동의 종말’이란 저작으로 거시적인 통찰력을 보여줬던 리프킨이 이번에는 이른바 ‘포스트 아메리카(미국 이후)’의 이야기를 풀어놓고 있다.


물론 그는 미국 이후는 유럽이라고 진단한다. 이른바 유럽통합을 이끌어낸 유럽의 정신사적 체험이 다음 시대의 세계사를 주도하리라는 것이다. 그 이유로는 무엇보다 유럽의 공동체 정신을 든다. 19세기 유럽인인 토크빌이 ‘미국의 민주주의’란 저작을 통해 미국의 정신에서 아메리칸 드림을 발견한 것처럼 21세기 미국인인 리프킨은 유럽의 공동체 정신에서 유러피언 드림을 찾는다.


개인의 자유와 부의 축적이란 아메리칸 드림의 패러다임이 타인과의 관계에서 보다 수준 높은 삶의 질을 추구하는 유럽정신으로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유러피언 드림은 개인의 자유보다 공동체 내의 관계를, 세계화보다는 문화적 다양성을, 무제한적 발전보다는 환경 보전을 염두에 둔 개발을 추구한다. 21세기에 유러피언 드림이 도덕적 명분을 얻을 수 있는 이유다. 이원기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