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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톨릭/성 프란치스코회

교만 &겸손-오수록수사님



이름: 오수록
2007/11/26(월) 19:21 (MSIE6.0,WindowsNT5.1) 221.132.72.99 1024x768
아무도 교만에 빠지지 말고 주님의 십자가만을 자랑할 것입니다(권고5)  

                                                                                            

  오수록(프란치스코)수사
                                                                                             맛세오형제회 영적보조자

1 오, 사람이여, 주 하느님이 사랑하시는 당신 아드님의 모습대로 그대의 육신을, 또한 당신 자신과 비슷하게 그대의 영혼을 창조하시고 지어내셨으니(창세기1,6), 그 분께서 그대를 얼마나 높이셨는지 깊이 생각해 보십시오. 2 그런데 하늘 아래 있는 모든 피조물들은 자기 나름대로 자기의 창조주를 그대보다 더 잘 섬기고 인식하고 순종합니다. 3 그리고 마귀들과 더불어 그분을 못박았으며, 그대는 지금도 악습과 죄악을 즐기면서 그분을 못박고 있습니다. 그러니 그대는 무엇을 가지고 자랑할 수 있겠습니까?
4 실상 그대가 모든 지식을 가지고 있고(1고린13,2), 모든 이상한 언어를(1고린12,28) 해석할 수 있고, 천상 일을 환히 꿰뚫어 볼 정도로 예리하고 명석하다 하더라도 그대는 이 모든 것에 대해 자랑할 수 없습니다. 5 왜냐하면 주님으로부터 가장 높은 지혜에 대한 특별한 인식력을 받은 사람이 있다 해도 한 마리 마귀는 그 모든 사람보다 천상 일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있었고, 지금은 지상 일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있습니다.
6 이와 마찬가지로 그대가 모든 사람들보다 더 잘 생겼고 더 부유하고, 악령들을 쫓아내는 기적을 행한다 해도 이 모든 것은 그대에게 방해가 되는 것이고, 그대의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이 모든 것을 가지고 그대는 아무것도 자랑할 수 없습니다. 7 반대로, 우리가 자랑할 수 있는 것은 곧 우리의 연약함(2고린12,5)이며, 매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십자가를 지는 일입니다.

1. 우리는 무엇을 자랑할 것인가?
성 프란치스코의 영적권고5에서 ‘우리는 무엇을 자랑할 것인가?’에 대해서 설명하십니다. 이는 사도 바오로의 신학사상에서 깊은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오로는 ‘사랑의 송가’를 통해서 언급하시기를 “내가 인간의 여러 언어와 천사의 언어로 말한다 하여도 나에게 사랑이 없으면 나는 요란한 징이나 소란한 꽹과리에 지나지 않습니다.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고 모든 신비와 모든 지식을 깨닫고 산을 옮길 수 있는 큰 믿음이 있다 하여도 나에게 사랑이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1코린13,1-2)라고 합니다.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입니다. 인간이 하느님으로부터 이렇게 많은 은총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은총이 사랑의 실천을 위해서 쓰이지 않는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모든 은총이 인간의 참된 가치를 말해줄 수 없고, 오직 사랑만이 인간에게 참된 가치를 부여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성 프란치스코는 이 내용을 보다 확장시켜서 ‘그대는 이 모든 것에 대해 자랑할 수 없습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곧 사도 바오로의「코린토인들에게 보내신 둘째 편지」11장과 12장을 염두에 두고 하신 말씀입니다.
 
2. 성서를 통해서 본 자기 자랑
『구약성경』에서는 자기 자랑을 무신론자의 근본자세로 보았습니다. “자기 재산을 믿으며 재물이 많음을 자랑하는 그들, 사람이 사람을 결코 구원할 수 없으며, 하느님께 제 몸값을 치를 수 없나니(시편49,7-8),” 자기 자랑은 곧 사람이 하느님께 의탁하지 않으려는 태도를 말합니다.

사도 바오로는「코린토인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많은 사람이 속된 기준으로 자랑하니 나도 자랑해 보렵니다(2코린11,18).” , “그들이 히브리 사람입니까? 나도 그렇습니다. 그들이 이스라엘 사람입니까? 나도 그렇습니다. 그들이 아브라함의 후손입니까? 나도 그렇습니다. 그들이 그리스도의 일꾼입니까? 정신 나간 사람처럼 하는 말입니다만 나는 더욱 그렇습니다. 나는 수고도 더 많이 하였고 옥살이도 더 많이 하였으며, 매질도 지독하게 당하였고 죽을 고비도 자주 넘겼습니다(2코린11,22-23).”

사도 바오로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겪는 모든 수고를 이야기하고 코린토인들의 견해에 따른 조건들로 자신의 권위를 옹호하였습니다. 아울러 자기 자랑은 바보짓이며 하느님 앞에서 올바른 태도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이어서 사도 바오로는 ‘참된 자랑’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내가 자랑해야 한다면 나의 약함을 드러내는 것들을 자랑하렵니다(2코린토11,30).”, “나는 그리스도를 위해서라면 약함도 모욕도 재난도 박해도 역경도 달갑게 여깁니다. 내가 약할 때에 오히려 강하기 때문입니다(2코린토12,10).”

「갈라디아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말합니다. “그러나 나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외에는 어떠한 것도 자랑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내 쪽에서 보면 세상이 십자가에 못 박혔고 세상 쪽에서 보면 내가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갈라6,14).” 이 말씀을 성 프란치스코는 한마디로 요약하여 말합니다. “우리가 자랑할 수 있는 것은 곧 우리의 연약함이며 매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십자가를 지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성 프란치스코는 자신의 짧은 생애를 통해서 이룩한 수많은 업적을 결코 자랑하지 않고, 모든 공로를 좋으신 하느님께 돌려드립니다. 그는 유언에서 이렇게 언급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나 프란치스코 형제에게 이렇게 회개생활을 시작하도록 해 주셨습니다. 내개 죄 중에 있었기에 나병환자를 보는 것이 나에게는 너무나 역겨운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주님 친히 나를 그들에게 데리고 가셨고 나는 그들 한태서 떠나올 때에는 역겨웠던 바로 그것이 내게 있어 몸과 마음의 단맛으로 변했습니다(유언1-3절).”

3. 왜 우리의 십자가를 자랑해야 하는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구원의 표지입니다. 그러므로 성서는 말합니다. “나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외에는 어떠한 것도 자랑하고 싶지 않습니다(갈라6,14).” 이처럼 우리 인간은 오직 십자가에 동참하고 한 몫을 나눔으로써 구원이 확실해 집니다. 그래서 사도 바오로는 거듭 말합니다. “우리는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을 자랑합니다. 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제 화해가 이루어진 것입니다(로마5,11).” 그래서 성 프란치스코는 언제 어디서나 이렇게 기도하였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님, 당신의 거룩한 십자가로써 세상을 구속하셨사오니, 우리는 여기와 전 세계에 있는 모든 성당에서 주님을 흠숭하며 찬양하나이다(유언5절).”

4. 연약함 속에 드러나는 하느님의 놀라운 능력
신앙인은 항상 자신의 연약함과 역경, 혹은 고난을 고백하고 자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자기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고백할 때, 그 안에 주님을 초대하고 영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예수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지고 다닙니다. 우리 몸에서 예수님의 생명도 드러나게 하려는 것입니다. 우리는 살아 있으면서도 늘 예수님 때문에 죽음에 넘겨집니다. 우리의 죽을 육신에서 예수님의 생명도 드러나게 하려는 것입니다(2코린토10-11).”

근본적으로 자기 자랑을 지양하는 성 프란치스코는 우리의 신뢰를 어디에 두어야 하는지를 보여줍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연약한 가운데에서도 매일매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부활하신 이래로 주님의 능력이 당신의 십자가에서 가장 강하게 나타났음을 우리는 압니다. 이 구원의 표지인 십자가는 고통과 역경을 받는 인간에게서 눈에 볼 수 있게 드러납니다. 그러므로 우리 사부 성 프란치스코의 말씀대로 매일 우리 주님의 십자가를 지는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그때야 비로소 우리는 구원의 역설적인 진리 앞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인간은 연약한 존재입니다. 연약하기 때문에 우리는 과거에도 죄를 지었고, 현재에도 그러한 죄를 지을 수 있는 요소를 지니고 있으며, 또한 미래에도 그러한 죄를 범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연약한 존재임을 인정해야만 합니다. 우리 인간들이 하느님 앞에서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은 우리 주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생각할 때에 보다 분명해 집니다. 그러기에 인간은 하느님 앞에서 사람들 앞에서 또한 모든 피조물 앞에서 겸손해야만 합니다. 우리의 죄악을 생각하면 겸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인간들에게 구원을 안겨준 십자가는 겸손이고 하느님의 자기 비하 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