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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톨릭/성 프란치스코회

영원한 생명

 영원한 생명  

                                                                                             
                                                                                            오수록(프란치스코)수사
                                                                                            맛세오형제회 영적보조자

중국의 명나라 사람 손분(孫蕡)은 죽음을 맞이하면서

“북소리 다급하고 서산마루에 해는 떨어지는데,

황천길엔 묵을 곳이 없으니 오늘밤은 누구 집에서 쉬어갈까!”라는 절명시를 쓰고 세상을 떠났다.

 죽음 앞에 선 사람이 이런 시를 쓴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겠지만,

절명시를 읽는 사람으로써의 감정은 왠지 슬프고 애잔하고, 쓸쓸하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그것은 그의 마음속에 ‘영원한 생명’에 대한

신앙관이나 내세관이 자리 잡고 있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스도교에서 말하는 영원한 생명에 대한 동경은

모든 인간의 공통적 요소라 할 수 있다.

 자기의 생명이 죽음으로 끝나기를 바라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 인간은 영원한 생명을 희망하게 되며,

 영원한 생명에서 삶의 성취와 참된 자기의 모습을 기대한다.

따라서 영원한 생명은 죽음의 세력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생명이다.

그것은 허무하거나 단절된 것이 아니라 영원한 것이다.

그런데 성서는 영원 생명을 단지 미래의 것으로만 보지 않고,

그리스도인들이 현재의 삶 속에서 얻을 수 있고 경험할 수 있는 것으로 파악한다. “

내 말을 듣고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이는 영생을 얻고 심판을 받지 않는다.

 그는 이미 죽음에서 생명으로 건너갔다.”(요한5,24)

이것은 하느님과 인간이 하나 됨 가운데 있음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영원한 생명은 하느님의 의지와 일치하며,

 하느님의 의지가 다스리는 현실 속에서 이루어진다.

그러나 우리는 일반적으로 영원한 생명을 그리스도교회의 교리가 말하는

 최후심판을 거쳐 역사적 종말에 얻을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죽음 다음에 오는 저 세상의 세계, 곧 천국에 있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성경은 영원한 생명을 단순히 미래적인 것만으로 보지 않고,

이 세상의 삶 속에서 경험될 수 있는 현재적인 것으로 파악한다.

 우리는 이것을 부자 청년과 예수의 대화에서 찾아 볼 수 있다

. 부자청년이 “선생님, 제가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 무슨 선한 일을 해야 합니까?”(마태9,16)하고 물었을 때, 예수는 “완전한 사람이 되려거든,

가서 너의 재산을 팔아 가난한아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마태9,21)고 말한다.

 예수의 대답 속에는 이처럼 영원한 생명에 대한 미래적인 요소와 현재적인 요소가 모두 포함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성경은 하느님의 아들 예수 안에 영원한 생명이 있다고 말한다.

즉 예수 안에는 참된 생명이 있다는 것은 다름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 가장 낮은 자의 모습,

곧 종의 모습으로 자신을 낮추고 희생하는 그 가운데 참된 길이 있고

참된 진리가 있고, 영원한 생명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 도리를 깨닫게 된다면 언제 죽든 그게 무슨 문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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