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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독서록

[스크랩] 고미숙,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 , <낭송 열하일기>

고미숙,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을 읽고

  

연암 박지원에 대해서는 북학파의 거두, 실학사상의 뛰어난 선각자 등 교과서적으로 얄팍한 지식으로만 인식하고 있다가 이 책을 읽게 되니 연암에 대해 자기반성과 함께 좀 더 그를 알게 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자못 기대감이 들었다.

역시 그의 작품은 학창시절 접한 열하일기 중 일야구도하기(一夜九渡河記)가 먼저 떠오른다. 물론 드문드문 호질 등을 읽었었지만, 오랜 세월이 지나다 보니 내용도 거의 잊혀졌다. 교과서에 오른 작품들은 난도질할 정도로 해체하고 외우고 도식화 시켜 이해할 수밖에 없었지만, 어린 나이에도 뛰어난 장면묘사로 인해 도도하게 흐르는 열하의 물줄기를 보고 느꼈던 그의 두려움과 그것을 외부의 소리가 마음의 소리로 잠식했음을 인식하며 점차 극복해나가는 과정의 묘사가 생생했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이토록 연암을 깊이 연구하고 이해할 뿐 아니라 열광하는 듯한 감성으로 그의 도정과 함께 사상의 발자취 하나하나 더듬어 가는 추종자가 있다니 놀라웠다.

사실은 분주함 속에 펼쳐든 책이었던지라 차분하게 작가의 해설을 흡수하며 읽을 수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다소 고미숙씨의 흥분이 호기심을 자아내기도 했다. 열하일기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그저 작가가 내게 주입하려 했던(이라고 느낄 수밖에 없던) 지식들은 너무 광범위해서 의식 속에서 겉도는 채 그의 이야기는 정리되지 못하고 떠돈다. 막바지에는 대출마감 시한에 몰려, 조용한 카페에 자리 잡고 시원한 커피와 책을 펼쳐 들고 끝까지 읽었으나 그냥 끝까지 글자만 따라가는 읽기가 되는 아쉬움을 겪었다.

아쉬움과 반성의 끝에 나의 책읽기의 순서가 잘못 되었다는 자각이 들어 열하일기에 대해 읽어보리라 작정하고 이왕 읽게 된 작가 고미숙씨가 편집한 <낭송 열하일기>를 선택하였다.

쉽게 번역하고 편집한 문체가 바로 눈길을 사로잡았다. 그 도정을 따라가다 보니 어느새 연암의 해박한 지식과 해학 호기심, 열정이 고스란히 읽혀진다. 왜 그가 연암에 그렇게 심혈을 기울여서 설명하려 애썼는지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몇 백 년 전의 고전이 연암의 감성이 고스란히 전달되어 오며 공감까지 준다. 새로운 문물에 대한 호기심과 받아들이고 적용시키고 싶은 열정이 따스하게 다가온다. 그 옛날의 어렵고 힘든 발자취로 인해 우리 문명이 발전되고 오늘을 이루었음을 새삼 자각하게 된다. <호질>의 소재를 일행과 필사하면서 고향에 돌아가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웃음을 주겠다고 주장하는 장면은 그저 웃음거리에 지나지는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소한 이야기에서 새로움을 발견하고 그로 촌철살인의 그의 해학은 당시 구태의연한 사회에 폐부를 찌르고 있었다. 그의 이런 노력이 금세 효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이렇게 유연하고 선진적인 사상을 품고 있는 선각자가 우리에게도 있었다니 뿌듯하고 연암을 좀 더 알고 싶어졌다.
이후에 열하일기 자취를 동영상을 통해 보니 더욱 흥미롭고 감탄이 나온다. 교통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대에 오랜 시간을 들여 여러 정치적 불리함까지 떠안은 채 여러 훼방하는 사건과 뜻밖의 사건들을 겪으면서도 웃음과 새로운 지식을 습득해 가고자 하는 열망을 잃지 않고 힘차게 걸었을 연암이 그려졌다. 그 발자취를 따라 조금이라도 걸어보고 싶다는 소망도 생긴다. 도도히 흐르는 압록강에서 시작하여, 그 줄기 애랄하(愛剌河)도 더듬고 싶고 피서궁에서 사신일행을 불러들인 황제를 만나러 가서 한밤 아홉 번 건넜다는 열하도 건너며 감히 연암을 상상으로라도 초대,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졌다.

그 옛날에 당신은 이곳에서 이런 생각을 하셨군요. 지금 세상은 이 열하보다 더 혼탁하고 거대하게 소용돌이치고 있답니다. 우리가 당신처럼 마음을 다스리며 이를 조금은 극복해 나갈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게 되네요.

2018. 7.

 

출처 : 천지예향(天地睿嚮)난향천리(蘭香千里)
글쓴이 : 바람꽃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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