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이 있다는 것을 어떤 이는 마치 도박하듯 믿는다.
천국이 있는 것을 증명하지 못하지만
그렇다고 없는 것도 증명하지 못한다면서
50%의 없을 확률에 인생을 거는 것보다
50%의 있을 확률에 인생을 거는 것이
덜 손해 보는 삶이고 훨씬 이익이라며
천국에 대한 믿음에 인생을 건다.
그렇게 50%의 확률에 인생을 걸고
50%의 확률로 제시된 신의 존재를 믿고
내세로의 부활과 영생을 믿는다.
그리고 이 50%의 확률에 인생을 거는 것을 신앙이라 말한다.
하느님이 계시다는 것이
천국이 있다는 것이
눈으로 볼 수 있듯이 100% 확실한 것이라면
그것을 어찌 신앙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하고 괴변을 늘어놓기도 한다.
그리하여 그들에게 믿음은 50%의 확률에 인생을 거는 도박이 된다.
그렇게 그들은 하기 쉽고 듣기 좋은 말로
사람들로 하여금 50%의 확률에 인생을 걸게 한다.
만분의 일도 백만 분의 일도 아닌
확률 50%라는 상품을 내건 도박사의 유혹에
사람들은 현혹되어
거기에 자기의 전 일생을 거는 도박을 한다.
하느님이 존재한다고
천국이 있다고
일단 믿고 보자고
그러면 내세에서 행복하게 살게 되리라고
요행을 바라며 철석같은 믿음을 발해본다.
이들이 믿는 것은 하느님이 아니라
50%의 확률,
이 확률에 대한 요행이다.
믿음은 50%확률에 요행을 바라는 도박이 아니다.
예수님께서 하느님 나라가 왔다고 선포하신다면
와 있을 수 있는 확률 50%에
전 인생을 걸라는 말씀이 아니다.
예수님은 확률에 대한 믿음을 요구하시는 도박사가 아니다.
하느님 나라가 와 있다는 것은 그분에게 100% 확실하다.
이 확실한 것에 인생을 거는 것이 믿음이다.
하느님에 대한 믿음은
50%의 확률을 가지고 어딘가에 있는 존재에 대한 믿음이 아니며
내세와 부활에 대한 믿음은
사람이 죽어 살아날 확률이 50%라는 막연한 논리에
인생을 걸고 생을 바치는 것이 아니다.
50%의 확률에 대한 믿음으로는
하느님을 아버지로 부를 수 없을뿐더러
하느님을 ‘느낄’ 수 없다.
하느님 나라를 체험할 수 없다.
많은 사람들이 믿음의 이름으로
요행을 바라며 도박을 한다.
그리고 복권에 당첨이라도 된 듯
믿음이 당첨된 복권이기라도 하듯
복권에 인생을 걸고
하느님을 찬미하는 광신의 노래를 부른다.
보면서도 보지 못하고
들으면서도 듣지 못하며
우리는 점점 광신의 늪으로 빠져든다.
우리 한국 종교계의 현상이다.
(* 지금 우리 한국의 많은 종교는 사람들의 마음에 광신을 불어넣으며
믿음의 복권으로 하느님을 팔고 그리스도를 판다.
조용한 조선을 복권으로 행운을 쫓는 도박의 세계로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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